▲ 참성단
▲ 최초 이민선 갤릭호
▲ 경인철도 제1차 기공식
▲ 초창기 해관
▲ 팔미도 옛 등대
▲ 갑문
1883년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던 제물포가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다. 외국의 신문물이 밀물처럼 들어오면서 인천은 우리나라의 관문이 된다.

인천에 전국 최초 콘텐츠가 가장 많은 이유는 이같은 제물포개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물포가 개항하며 근대문화가 이입되면서 해관, 호텔, 등대, 공원 등 제도나 시설, 문물 등 최초의 사례들이 가장 많이 생성된 것이다.

인천의 역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뒤 강화도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렸던 것이다. 인천의 역사는 그렇게 우리나라의 개국과 함께 시작되었다.

인천의 본격적인 역사는 20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실상 5000년의 역사를 모두 품고 있다.

인천은 문학산을 중심으로 미추홀로 출발해 2030년을 도도하게 흘러왔다. 인천은 세계문화문화유산인 강화 고인돌군을 비롯해 문학산 고인돌 등 선사인들의 자취로부터 고대 중국으로 가는 최초의 뱃길이었던 능허대에 이르기까지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역사를 지닌 도시다. 고려시대엔 왕실의 유향이 서린 7대 어향이었으며 고려 후기엔 제2의 수도였던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며 몽골을 물리친다. 특히 이 기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함으로써 인류의 문명을 크게 앞당긴다.

이후 조선시대엔 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 왕실도서관인 정족사고를 운영하고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을 탄생신킨 곳이기도 하다. 이런 세계 최초의 인쇄문화는 지난해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치'라는 성과로 이어진다.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도시이기도 하다. 1885년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인천으로 들어오며 교회음악을 전파한다. 이 과정에서 클래식음악을 접한 사람들이 우리나라 클래식음악 1세대가 됐으며, 이들은 서울로 올라가 클래식음악의 맹아를 퍼뜨린다.

대중음악 역시 인천에서 시작됐다. 광복 이후 다국적군이 인천에 주둔하면서 많은 미군클럽이 중구 신포동과 부평 일대에 생겨났다. 여기에다 미8군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대중가수 1세대들의 출현으로 인천은 대중음악의 메카 역할을 했다. 노동음악 역시 1960년대~1970년대 부평, 주안공단 등을 중심으로 노동운동과 함께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근래에 들어선 우리나라 최초로 경제자유구역이 송도, 영종, 청라에 지정됨으로써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은 지금도 전국 최초, 인천 최고의 유산들을 생산해내며 미래를 향해 쭉쭉 뻗어나가는 중이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사진제공=인천시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