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수감기관에 대한 자료요구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수감기관들은 국회에서 요구하는 자료준비로 몸살을 앓는다. 공무원들은 밤잠을 줄여야 하고, 자료준비에 매달리는 사이 행정은 마비되다시피 한다. 올해도 역시 이런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유례가 없는 집권 여당의 거부로 국정감사가 파행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수감기관의 입장에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무분별한 자료요구 관행을 바꿔달라고 애원해보지만 국회의 반응은 변하지 않는다. 국회가 지난달 초부터 경기도에 요구한 자료는 안전행정위원회 803건, 국토교통위원회 811건 등 모두 1614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요즘 경기도 공무원들은 새벽 2시를 넘기면서까지 야근을 해야 한다. 새벽 퇴근이 마치 밥 먹듯 일상이 되는 현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 또한 인권침해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20일 전국 광역시·도 공무원노동조합 연맹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방문해 지방고유사무에 대한 국정감사 폐지와 과다 자료요구 중단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경기도에서도 매년 반복하는 일이다.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지 언제까지고 이렇게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물론 국정감사는 중요하다.

국민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성실히 임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고 불합리한 상황이 있더라도 제도를 바꾸기 전까지는 피감기관으로서 마땅한 자세와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감기관 직원들에게 무작정 인내를 요구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옳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자료요구를 줄이는 방법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지방고유 사무에 대한 중복감사를 중지해 달라는 요구가 불합리한 것도 아니다.

한때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감사원을 국회 직속기관으로 두고 일상적인 감사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제 다시 검토해 볼 때가 됐다. 하지만 이게 아니라면 지방 공무원들의 요구를 더 이상 묵살하지 말아야 한다. 가령, 지방 고유사무에 대한 국정감사의 폐지 같은 요구는 지금 당장 실시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