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SBS골프채널·MBC-ESPN 골프해설위원
▲ 前 SBS골프채널·MBC-ESPN 골프해설위원

세계 최고의 골프 대회로 알려진 마스터즈 토너먼트가 열리는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1998년, 세계 골퍼들이 참가 티켓만 쥐어도 영광이라는 그 최고의 대회에 한 젊은 아마추어 선수가 티샷 준비에 분주하다. 스무 살 나이인 그가 바로 경기장 인근에 위치한 조지아공대 3학년생이던 맷 쿠차(Matt Kuchar)로 전년도 US 아마추어 챔피언 자격으로 자동 출전권을 받은 신분이었다.

수십만이 넘도록 운집한 갤러리는 참가 선수들이 쏟아내는 명장면에 함성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언론은 이 젊은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와 캐디를 자청한 아버지와 함께 사흘간의 토너먼트를 치르면서 시종일관 아버지와 함께 밝은 미소를 잃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언론은 그의 미소가 1만 와트가 넘는 메시지의 전달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힘든 상황에 처해도 참을 줄 아는 인내와 다른 선수의 멋진 샷이 연출될 때마다 '굿 샷'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매 순간마다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아버지 역시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겸손과 겸양을 지닌 그가 바로 타이거 우즈가 프로로 전향하기 전 차지했던 바로 그 타이틀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골프 스코어의 챔피언이기 이전에 골프 정신의 챔피언 면모를 갖춘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미국 언론에는 아직까지도 그 당시 쿠차가 보여준 그 자태가 회자되고 있다.

그가 마지막 날 라운드 마지막 홀에 들어설 때 관중들이 보여주었던 그 뜨거운 박수, 이에 정중히 답하는 그의 매너와 자세에 예의바른 한 미국 청년의 미래가 창연히 빛나고 있었다. 그 어떤 마스터스 대회에 우승자가 마지막 홀로 들어설 때나 우승컵에 입 맞추던 순간의 환호보다 더욱 큰 함성이었음을 그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를 마치자마자 그는 황급히 짐을 챙겨 경기장을 나섰다. 곧 다가올 대학 중간고사를 위해 집으로 향한 것이었다. 마지막 시상식장에 아마추어 최고 경기자로서의 축하자리를 보고 싶어 하던 갤러리의 기대를 뒤로한 채였다. 세계의 언론은 그가 프로선수로의 전향 선언을 그의 학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당장에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모두들 아쉬워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났고 그는 마침내 졸업했다. 세인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고 그는 플로리다에 있는 한 투자은행에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또 한 번 세상이 놀랐지만 그는 그때도 그 환한 미소를 다시금 지었다. 1997년 US 아마추어가 보여준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다.

그랬던 그가 몇 년 뒤 마침내 PGA투어에 프로를 선언했다. 그가 지금껏 이룬 업적은 총 출전 경기 375회, 통산 7승, 톱 10이내 경기 수 85회, 세계 랭킹 17위, 통산 상금 3750만 불 등이다. 백만장자를 넘어 천만장자의 대열에 오른 지 이미 오래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여자골프가 세계무대를 연이어 뒤흔들고 있다. 박세리로 시작한 우리의 골프는 박인비에 이어 전인지까지, 게다가 국내투어 1인자 박성현의 미국무대 등단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아마추어 골프를 평정한 대어 성은정마저 대기 중이다.

이러한 화려함은 끝날 줄 모르고 그 선수층이 갈수록 두터워지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이라 하겠다. 그런 가운데 수없이 많은 선수들이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부진을 겪고 있는 선수들에겐 혹평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잘 나갈 때 호들갑은 잊은 채 말이다. 그들에게는 골프가 인생이자 곧 생업이다. 바라보는 우리가 그들의 승승장구와 성공을 빌어주는 것은 좋으나 그들의 인생과 삶, 그 자체를 간섭하고 비방해서는 안 된다.

선수들 역시 단판의 승부보다는 나름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천천히 한걸음씩 다가가는 그런 패스트푸드보다는 슬로푸드를 요리해야 한다. 맷 쿠차가 보여준 미소의 메시지는 그런 면에서 미소, 그 이상임에 틀림없다. /前 SBS골프채널·MBC-ESPN 골프해설위원


본 칼럼은 impactgolf가 협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