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선 경희대 교수
▲ 최일선 경희대 교수

내 아버지는 노작교육(勞作敎育) 사상에 투철한 분이었다. 사람답게 크려면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부족하고 몸을 움직여 일하고 깨달아야 한다고 누차 말씀하셨다.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소농이었던 아버지는 자연스레 나를 농사일로 이끌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즈음부터 시작된 농사일의 기억은 교육적 활동이라기보다는 그저 괴로운 노동일뿐이었다. 이른 봄에 못자리 만드는 일을 거들러 논에 들어갔다가 차가운 물에 발이 시려 논둑으로 뛰쳐나오면 아버지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여름엔 농약 치는 게 일이었다.

요즘같이 무덥던 어느 날, 낮술로 몸을 잘 못 가누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내가 동력분무기를 짊어지고 농약을 쳤는데 집에 오니 온몸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났다. 마스크도 없이 농약 안개를 마시며 몇 시간 동안 일했기 때문이었다. 읍내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나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겪은 일이었다.

진짜 바쁘기로는 가을철이었다. 요즘에는 벼 수확이 간단해서 콤바인으로 탈곡과 포장까지 한 번에 끝내지만 당시에는 낫으로 베고, 말리고, 묶고, 엮어 세우고, 리어카로 집 마당까지 운반하고, 탈곡하기까지 나뿐 아니라 온가족이 매달려야 했다. 비라도 오면 논이 질퍽거려 일이 몇 배 힘들어졌다. 드물게 가을장마라도 오면 그건 거의 재앙이었다. 그럴 때면 온 집안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몸고생에 더해서 마음고생도 심했다.

그게 노작교육이었다는 것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교육학을 공부한 후 알았다. 노작교육사상은 지식 중심 교육을 비판하고, 학생들의 신체를 움직이는 활동을 강조하는 교육사상이다.

페스탈로찌와 존 듀이가 대표적인 노작교육 사상가다. 페스탈로찌가 처음 세운 학교에서 아이들은 여름에는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겨울에는 실내에서 물레와 베틀 일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했다.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가르치려는 그의 노작교육사상에 따른 것이었다. 듀이가 세운 '실험실 학교'의 교육과정은 목재와 연장을 사용하는 공작실 활동, 요리 활동, 바느질과 베짜기 같은 직물 작업 활동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노작교육의 맥은 대안학교가 잇고 있다. '손놀림' 노작교육으로 유명한 대안학교인 발도로프학교는 인지적 재능만이 아니라 도덕적, 실용적 재능의 조화로운 발달을 추구한다. 경기도 광주의 대안학교 푸른숲발도로프학교는 노작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공교육 교육과정에 발도로프 노작교육을 도입한 학교도 여럿 있는데 속초의 공현진초등학교가 그 중 하나다.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닭과 채소를 직접 기르고, 작은 컨테이너 목공실에서 드릴과 톱을 사용해 나무 연필꽂이를 만들어 쓴다.

포켓몬 고(Pokemon GO)와 함께 도래한 증강현실(AR)의 시대에도 노작교육은 유효할까? 얼마 전에 일본에서 위상이 높은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수업참관 중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학생들의 기말 발표 행사였는데 대부분이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에 빔 프로젝터에 의해 추방돼 고물상에 팔려간 구식 기계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찬찬히 보니 나름 장점이 있었다. 미리 제작한 PPT 슬라이드만을 사용하는 빔 프로젝터와는 달리, 물건을 올려서 스크린에 투영할 수도 있고, 빈 슬라이드에 즉석에서 쓴 손 글씨나 손 그림을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손놀림' 노작교육의 훌륭한 시각매체였던 것이다. 포켓몬 고를 만들어낸 상상력과 노작교육의 유효성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일까?

사실 페스탈로치와 듀이는 이상적 학교의 모형을 이상적 가정에서 찾았다. 페스탈로치의 학교는 가정을 본뜬 것이었고, 그는 진정한 학교교육은 가정교육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듀이는 부모가 아동이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다면 가정생활 그 자체가 중요한 학습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본다면 노작교육은 대안학교나 소수의 공교육 과정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에서도 고민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노작교육사상에 따른다면, 아이들이 집에서 책과 씨름하는 것만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가사에도 동참할 때 전인적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일의 강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 지금 생각하면 내 아버지의 노작교육사상은 지나친 아동노동(?)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논리가 아니었나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나름 성공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나를 집보다는 일 안하는 학교를 좋아하게 하고, 일하는 주말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평일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최일선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