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모두가 당연히 살아나가는 오늘에서 가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이단적으로 보이는가."(허5파6 글/그림, <여중생A>, 네이버 웹툰 연재)

"이단"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단'이라는 단어는 이항대립의 쌍을 가진다. 이단의 반대편에는 '옳은 것'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저 문장에서 "가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것, 잘못된 것처럼 여겨진다―이 글에서는 가치(價値)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값어치'로 상정하여 사용하였다―. 그런데 "가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틀린 일일까.

근대 이후가 자본에 의해 경영되는 시대임은 명백하다. 이런 시대를 사는 인간은 모든 일을 '값어치'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에게 "가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근대인이 스스로에게 값어치를 매기고 값어치 있는 것을 좇는 삶 자체가 틀린 일은 아니지만 '값어치'가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는 '가치 맹신주의'가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값이 최우선이 되는 세계에서는 '값=∞'의 의미까지 '값=0'으로 쉽게 환산되며 '값=0'은 곧 '의미 없음'으로 귀결된다. 개인의 삶까지 '값의 유무'로 판단됨에 따라 어떤 개인의 삶은 '값=0'으로 규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인문학을 통폐합해버리는 대학의 경우만 보더라도 '인문학=값없음=의미 없음'의 비약적이고 폭력적인 사고 체계에서 비롯된 조치가 아니던가. 이런 세계에서 '당연한 오늘'에 수긍하지 않는 목소리들(예컨대 국가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나 문학, 예술 등의 분야)은 이 세계에서는 잘못된 일이자 '이단'으로 규정되어버린다.

어떤 것이 '값=0'으로 보인다고 해서 '의미'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값∝의미'는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것은 감히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에 '값없음'에 놓이기도 한다. 그 '값없음'의 범주, 즉 가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야 말로 값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인간의 의미를 뚜렷하게 해줄지 누가 알겠는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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