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향한 대항해 … '극지연구' 뱃고동 울린다
총사업비 1080억 투입 … 韓최초 결빙해역 개척 수행
남·북극기지 물품보급·장보고 과학기지 건설 지원
편의·업무시설 완비 … 장기간 선박생활 최적화 설계
▲ 아라온호 선미에 설치된 시료 채취장비를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한국 최초의 쇄빙연구선(碎氷硏究船) 아라온호.올해 초 해양연구를 위해 양극 기지로 항해를 떠났던 이 배가 지난달 모항인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한 달 간 연구장비를 보강하거나 선박을 정비하는 작업을 완료하고 7월14일 또 다른 연구를 위해 북극 알래스카로 출항한다.모항에 정박해 있던 아라온호에 탑승해 우리나라 해양연구의 현장을 둘러봤다.

▲ 승선자들의 건강을 위해 아라온호 내부에 마련된 체육시설의 모습.

■'바다의 모든 것' 아라온

아라온(ARAON)호는 바다를 뜻하는 순 우리말 '아라'와 전부를 뜻하는 '온'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로, '전 세계 모든 바다를 누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총 사업비 1080억원을 들여 지난 2004년 기본설계를 시작했다. 그 후 약 6년을 기다려 2009년 운항을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남·북극을 연구할 수 있게 된 시작점이기도 하다. 쇄빙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아라온호는 독자적인 운항 뿐 아니라 다른 선박을 위해 결빙된 해역에서 항로를 개척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또한 운항하던 선박이 얼음에 갇혔을 때 구조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그러기 위해 일반 선박에 비해 쇄빙하는 부분인 선수부와 선미부의 폭이 넓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1m 두께의 얼음을 시속 3노트로 깰 수 있다.

아라온호의 임무는 남·북극 결빙해역에서의 독자적인 극지연구를 수행하며, 남·북극 기지에 물품 보급과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건설을 지원하는 것이다.

얼음지역을 뚫고 가기 위해 배 자체에 '쇄빙'기능을 탑재한 셈이다. 주요연구분야는 극지 환경변화 모니터링, 대기환경 및 오존층 연구, 고해양 및 고기후 연구, 해양생물자원 개발연구, 지질환경 및 자원특성 연구 등이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아라온호가 출항할 때 수많은 연구원들이 탑승한다.

이 배에는 승무원과 연구원, 기타 인력을 포함해 최대 85명이 탑승할 수 있는데, 승무원은 보통 25명 내외, 연구원은 해외 전문가를 포함해 60명 내외, 오랜 기간 배에서 생활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처할 의사 1명, 조리원 등이 있다.

▲ 승선자들에게 수개월동안 제공되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의 모습.


■승무원과 연구진들의 바다 위 집이자 연구소

한번 출항하면 1년에 1회~2회만 한국 땅을 잠시 밟을 뿐이어서 아라온호 탑승자들은 1년동안 약 10개월을 배 위에서 지내는 셈이다.

그런만큼 이 배는 장기간 생활하는데 최적화 되도록 설계됐고 더불어 선상 해양연구 작업을 위해 각종 연구실이 설치된 점이 특징이다.

연구원들의 주요 작업이 이루어지는 선미 갑판에는 수심 5000m까지 내려가 연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특수로프와 케이블이 있었으며, 올해 하반기 출항을 위한 준비로 수많은 작업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선미를 통해 아라온호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는 선원 침실과 연구원 침실, 연구소 등이 갖춰져 있었다.

주로 2인 1실을 사용하는 연구원들의 침실에는 빨래건조대, 신발장에서부터 개인 화장실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이 구비돼있다.

수개월동안 먹을 식재료는 가격으로만 9000만원어치를 한번에 싣는다. 이를 위해 아라온호에는 대규모 음식 저장고가 마련돼 있었다.

한 편에는 승선자들의 건강 유지를 위한 십여 개의 운동기구와 탁구대 등으로 채워진 체육관이 있다.

2층에는 연구원 침실과 병원이 있다. 오랜 기간 배 안에서 생활해야하는 탑승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중소병원 입원실 못지않게 잘 꾸며져 있다.

2층에서 3층으로 이동한 도서관은 재정비가 한창이다. 그 옆에는 배 위에 센서를 설치해 대기를 상시 측정하는 대기과학실이 있다.

연구실은 건식연구실과 습식연구실로 구성돼있다.


건식연구실로는 컴퓨터실, 무정전장치실, 음향 및 지구물리 연구실, 해양장비실, 기상자료 처리실, 기상자료처리실, 전자계측 작업실, 중력계실 등이 있다.

습식연구실로는 지질시료실, 채취한 해수를 분석하는 발틱룸(Baltic room), 해수분석 연구실, 화학분석 연구실, 생물학 연구실 등 각 분야의 연구실이 마련돼 있다.

특히 산호와 미생물 등 남극에 사는 희귀 생물들을 보관하는 수족관이 눈에 띄었다. 지난 연구때 아라온호 연구진들은 남극에서 서식하는 대구를 채취해 연구 자료로 삼기도 했다. 해저에 있는 시료를 끌어올리기 위해 배 위에는 3대의 대형 크레인이 설치돼 있었다.

배 안에서는 채취한 샘플을 이용한 간단한 1차 연구가 이루어지며, 이를 보존해 한국으로 들여와 본격적인 2차 연구를 수행한다.

항해시에는 연구원들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회의실 안에는, 실제로 얼음 위에서 채취 작업을 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들 뒤에는 위풍당당한 아라온호가 든든히 지키고 서있다.

아라온호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배의 운항과 통신을 담당하는 선교(조타실)에는 정박해있는 기간에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라온호는 추진기 자체의 방향을 임의로 돌릴 수 있어 전후·좌우 방향전환에 용이한 전방향 추진기로 구성돼있다. 다른 배에 비해 조정 성능 면에서 뛰어난 것이다.

또한 바다에서는 배가 한 위치에 멈춰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필요시 특정 위치, 일정한 선수 방향을 계속 유지하고 제어하기 위한 자동위치제어장치도 마련했다. 이를 위해 총 4대의 추진기가 작동한다.

한국과 남·북극의 거리는 각각 5484마일과 2960마일이다. 호주를 거쳐서 가야하는 남극은 시간상으로 약 20일 정도가 소요되며, 북극은 약 5800㎞를 항해하는 것으로 총 11일 정도가 소요된다.


■'제2의 아라온호' 모항 유치전

극지연구선인 아라온호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제 2아라온호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제 2아라온호는 7487t급 아라온호 보다 규모가 더 큰 1만2000t급이 될 전망이다. 총 사업비는 2855억원이며, 쇄빙능력은 2배 더 높여 2m 두께의 얼음을 시속 3노트로 연속 쇄빙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출 예정이다.

이 제 2아라온호의 모항을 유치하려는 각 도시의 경쟁이 치열하다. 제 2아라온호가 북극 연구를 전용으로 하게 돼, 모항 유치에 성공한다면 북극항로를 선점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아라온호의 모항인 인천항과 부산항이 나섰고, 울산항과 동해항까지 가세해 경합을 펼치고 있다.

/글 노지영 인턴기자·사진 황기선 기자 jynoh89@incheonilbo.com



"아찔한 순간·진귀한 경험 일반인 못누릴 바다의 특권"

인터뷰 / 김영준 아라온호 일등항해사

"거센 파도에 해적까지 … 매일 긴장되죠."

목포해양대학교를 졸업한 김영준(사진) 아라온호의 일항사, 즉 일등항해사다. 승선생활을 시작하고 3항사 경력이 1년 이상 되면 2항사가 된다. 2항사 경력이 2년 이상이면 1등 항해사가 될 수 있다.

배의 운항을 담당하는 항해사는 연구원들이 원활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연구원들은 선미에서, 항해사는 선교(조타실)에서 서로 교신하며 배위 위치를 조정한다. 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2014년 7월 아라온호를 타게 된 그는 "북극에서 고위도를 넘어가게 되면 새벽시간에 오로라를 볼 수 있다"며 "정말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고 멋쩍게 웃는다.

실제로 수개월간 바다 위에서, 그리고 배 안에서 생활하는 항해사들은 일반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오로라와 희귀한 생물종을 만나는 귀한 경험을 하는 그에게도 "아라온호에 얼음을 부수는 쇄빙기능이 있지만, 한 번은 거대한 얼음 사이에 옴짝달싹 못하고 갇힐 뻔한 적이 있었다"고 전할만큼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현재 아라온호에는 세 명의 항해사가 있다. 항해 때는 4시간 씩 교대근무를 하고, 정박해있을 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줄곧 전문가다운 빈틈없는 모습만 보여준 그였지만 가족, 친지를 자주 만나지 못해 가끔은 외롭다고 말한다. 그는 "아라온호는 흔치않게 인터넷이 가능한 배"라며 "스마트기기만 있으면 육지에서처럼 영상통화, 메신저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노지영 인턴기자 jynoh8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