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실장
새얼문화재단이 올해로 '불혹'의 나이를 맞았다. 지난 3일 열린 새얼문화재단 후원회 정기총회에서 조우성 본보 주필이 축사했듯이, 새얼을 지켜온 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지극정성,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넓은 포용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용택 이사장은 서른아홉의 나이에 '장학사업'으로 새얼문화재단을 시작한 이래 인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문화 사업을 점차 확장해 왔다. 그렇게 한번 시작한 사업은 단 한 차례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새얼의 사업은 질(Quality)은 물론이고, 하나같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올해 30주년을 맞는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은 전국 유일의 대규모 백일장으로 성장했다. 23년째 무대에 올려질 '국악의 밤'과 32회 공연을 펼칠 '가곡과 아리아의 밤'은 우리 전통음악과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계간 <황해문화>는 지난 1993년 창간한 이래 지난해 85호를 발행했으며, 몇 년 뒤면 100호가 발간될 것이다. <황해문화>는 세계의 시각으로 지역을 보고, 지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 시대의 역사를 개척해 왔다.

특히 많은 종합인문교양잡지가 폐간하는 상황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옴으로써,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큰 획을 긋고 있기도 하다. 매달 둘째 주 수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새얼아침대화에선 지금까지 5만3400명의 기관장과 사회단체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강연을 했다. 역시 30년 째 행군을 진행할 '새얼역사기행'은 인천에 대한 애향심을 견고하게 해주는 '인천사랑여행'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은 결코 즐거울 수 없다.

새얼역사기행단은 인천을 떠나 우리 국토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인천 땅에 대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키워 돌아온다. 이 같은 저력이 이사장을 포함해 9명의 새얼 실무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이처럼 '작은 조직'이 저처럼 '큰 일'을 해낸다는 것은 선명한 철학과 부글부글 끓는 용암 같은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철학이 바로 우공이산과 해불양수인 것이다.
새얼이 한번 시작한 사업은 꾸준히 해온 결과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공이산은 이미 증명됐다. 해불양수 역시 지 이사장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낳고 자랐어도, 현재 인천에서 살거나 일 하고 있으면 인천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인천에서 낳고 자랐어도 다른 지역에서 일하거나 산다면 그 지역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학연, 지연과 함께 우리 사회의 갈등 가운데 하나가 지역 간 갈등임을 생각해볼 때 그의 철학은 '사회대통합'의 단초를 제공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인천 뿐 아니라 수도권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살게 마련이다. 인천은 다수의 독립된 실체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유지·발전되는 다원주의적 속성이 강한 도시다. 다양성과 통일성, 개방성과 역동성이 공존하며 인천이란 거대한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새얼문화재단의 지나온 40년은 '아름다운 인천'을 위한 성실, 노력의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새얼은 앞으로의 40년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혹자는 새얼에 대해 평범한 시민보다는 '인천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들은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지 이사장을 두고 한 때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다'는 풍문이 떠돌 때도 있었다. 실제 그에게 정치적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오래 전, 기자는 신분을 이용해 "정말 정치에 관심 있으시냐"고 직간접적으로 질문했던 적이 있었다. 지 이사장은 그때마다 "내가 정치를 해서 뭘 하겠나"라며 빙그레 미소짓곤 했다. 90년대 초중반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한 시민단체 대표가 재직할 당시 "절대 정치엔 관심 없다"고 했지만, 결국 정치권에 진입하려다 실패한 사실을 목격한 기자로서는 100프로 확신을 갖기란 어려웠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됐다. 정치권에 들어오라는 유혹은 사실이었지만 지 이사장을 내면에 대한 얘기는 단지 풍문이었다는 것을.

후계자와 관련해서 질문한 때도 있었다. "만약 회장님께서 부재하시면 누가 새얼을 이끌어 가나요? 후계자는 누구로 생각하시는지요?"라고 물었었다. 지 이사장은 "말이 뛰어나가면, 망아지가 더 잘 하는 법"이라며 편안한 어조로 답변해 주었다.
새얼 실무자들이 죽어라 뛴 결과이긴 하지만, 중앙정부나 인천시의 도움 없이 순수한 민간기금으로 57억 원을 적립했다는 것 또한 새얼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창립 40주년을 맞은 새얼은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닌 인천시민 모두의 자산과 자랑이 되었다. '새얼'이란 이름이 인천을 빛내주듯이, 앞으로의 40년은 인천, 그리고 인천시민이 새얼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